자기 집에 모시니라 설교자 이재철

말씀: 요한복음 19 : 23∼30


개신교 목사님 중에 직접 수도원을 창설하고, 그 속에서 수도자로 살아오는 분으로 엄두섭 목사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 노 목사님이 교회를 목회 하는 목회자의 삶으로부터, 한평생 수도원 운동에 앞장서는 수도자로 돌아서게 된 데에는 그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30세 되던 해에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 부임한 곳은, 전라남도 광주 인근의 남평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막상 그 곳에 당도하고 보니 교회의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하였습니다. 까닭을 알아보았더니, 그 교회에서 신앙적으로 가장 모범적이었던 집사님 한 분이 얼마 전에 교회를 떠나 `산중파'를 따라 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산중파'의 지도자는 이현필이란 사람이었는데, 그 무리들은 산 속에서 기거하면서 기성교회에는 다니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성경을 공부하며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그들을 `산중파'라 부르면서 아예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부임한 엄목사님 역시 그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전라도에는 공산당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었는데, 엄목사님이 목회 하는 교회에도 공산당원임을 자처하는 자들이 5명이나 될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6 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인민군들에 의해 서울이 점령되었다는 정보를 제일 먼저 입수한 사람들은 광주를 비롯한 도시 큰 교회 목사들과 힘있는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연줄을 대어 상무대 장교들의 군 트럭을 타고 서둘러 부산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인민군들이 전라도까지 쳐들어 왔을 때 곤욕을 치루어야 했던 사람들은, 시골 작은 교회 목사들과 힘없는 교인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미국 여인으로 한국명이 유화례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끝까지 돕다가 그만 피난 시기를 놓쳐 버린 채, 인민군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국적상 만약 인민군에게 붙잡히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도와 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미국 여선교사의 생명보다는 각자 자기의 생명이 더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목숨을 걸고 미국 여선교사를 구출해 낸 사람들이 바로 `산중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던 미국 여선교사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된 자의 의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큰 궤짝을 만들어 여선교사를 그 속에 들어가게 한 뒤 번갈아 지게에 지고, 도중에 사람들이 물으면 짐짝이라 대답하면서 70리나 떨어진 화순 화학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산중턱에 있는 동굴에 선교사님을 숨겨놓고, 인민군들이 해를 넘겨 물러갈 때까지 산중파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해 그녀를 지켰습니다. 그 와중에서 산중파 사람 두 명이 빨치산에 발각되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산중파 사람들의 이와 같은, 생명을 건 헌신과 사랑에 의해 미국 여선교사는 끝내 무사히 구출될 수가 있었습니다.

 

엄목사님은 그 사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과연 누가 진정한 크리스천인지, 누가 참으로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인지, 어느쪽이 정말 교회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8년만에 서울로 목회지를 옮기어 도시 그리스도인들의 타락상을 더욱 절실하게 확인한 뒤, 옛날 산중파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목회를 관두고 수도원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참다운 크리스천이란 그 심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만 어떤 상황 속에서든, 자신이 모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당신의 생모 마리아를 가리켜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당신의 어머니를, 요한이 친 어머니처럼 봉양해 줄 것을 당부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27)

 

그 날로부터 제자 요한은 지체없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서 모셨습니다. 하루 이틀 혹은 한 두 달 모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요한은 장수한 마리아가 늙어 죽을 때까지, 다시 말해 요한 자신이 늙은이가 될 때까지 마리아 모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친 어머니를 한평생 한 집에서 모시고 사는 것도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때론 뜻이 맞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로는 서로 마음이 상할 때도 있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자기 어머니도 아닌 남의 어머니를 한평생 모셨습니다.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과 제자 요한을 사촌지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의 어머니가 친 자매지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 25절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가 서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는바, 그 이모가 바로 요한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촌 요한에게도 이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요한이 마리아를 한평생 모시기에 이모인 까닭에 특별히 편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척지간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으므로 남남일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한결같이 모시기를 중단치 않았습니다. 요한은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성미가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에게 은밀히 부당한 청탁을 할 정도로 이기적이었던 인간이었습니다. 그와같은 요한이 어떻게 한평생 그 일을 해 낼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사도 요한이 그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집에 모시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만 모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요한은 남의 어머니를 한평생은 고사하고 한 두 달도 제대로 모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기 이전에, 자신의 심중에 주님을 먼저 모셨던 것입니다. 자신 속에 모시고 있는 주님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님의 사랑에 의해, 어떤 상황 아래서든 변함없이 주님의 명령에 따라 노인이 될 때까지 할머니 마리아를 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이 주님을 모셨을 때 단지 마리아만 섬겼던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자신이 모신 주님으로부터 늘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모신 그의 심중에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마리아 봉양이 끝났을 때에, 노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요한1서, 2서, 3서를,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한평생 주님을 모시고 살지 않았더라면 결코 가능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한평생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아니 하나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심을 날마다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 4:7∼8)

 

큰 교회 목사들과 힘있는 교인들이 관심도 없이 내팽개쳐두고 가버린 미국 여선교사님을, 그들로 부터 이단시 당하던 산중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건 채 지게에 지고 70리나 떨어진 산 속으로 들어가 동굴에 숨겨놓고 해가 바뀔 때까지 먹을 것을 구해 공궤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들이 여선교사님을 극진히 모셨음을 의미합니다. 모두 자기 살 궁리만 하는 그 살벌한 전쟁판에서 어찌 산중파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아니 두 사람의 생명을 잃으면서까지 미국 여선교사님을 끝까지 모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야말로 진정 그 심중에 주님을 모신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심중에 계시는 주님 때문에,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그 사랑을 힘입어 그들은 그녀를 모시고 섬기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산중파의 지도자였던 이현필은, 추운 겨울 신발도 없이 선교사를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산속을 헤매고 다니면서도 주님을 향해 이런 사랑의 시를 남겼습니다.

 

주님 가신 길이라면, 태산 준령 험치않소

방울방울 땀방울만 보고 따라 가오리다.

 

주님 가신 길이라면, 가시밭도 싫지 않소

방울방울 피방울만 보고 따라가오리다.

 

주님 계신 곳이라면, 바다끝도 멀지 않소.

물결물결 헤엄쳐서 건너가서 뵈오리다.

 

주님계신 곳이라면, 하늘 끝도 높지 않소.

믿음 날개 훨훨 쳐서 올라가서 뵈오리다.

오, 주예수, 주님이여, 이 천한 맘에 계시오니

밝히 인도하여 주옵시기

꿇어 엎드려 비나이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만약 교회가 타락하고 교회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건물이 낡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을 그 심중에 모시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고서는 교세가 아무리 커도 사도 요한처럼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참 제자가 될 수 없고, 주님을 심중에 모시지 않고서는 예배당이 제아무리 웅장해도 소위 `산중파' 사람들과 같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모시지 않은 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방법이 없고, 주님을 모신 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 될래야 아니될 수도 없음은,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빛이요 소금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시지 않고서는 교회가 교회다울 수 없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 다울 수 없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은 창립 9주년을 맞는 기념주일입니다. 9년전 우리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가 되자는 의미에서 교회 이름을 `주님의 교회'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에 속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각자가 사도 요한과 같은 제자, `산중파' 사람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목사를 비롯하여 모든 임직자들은, 그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분명한 본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교회 역시 우리가 주위에서 더러 볼 수 있는, 추악한 사람들의 교회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저 개인 신상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1년 후면 저는 이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저 스스로 저의 임기를 10년으로 정하고 떠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 아닌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고 모시는 우를 피차 범치 않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이 교회가 진정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주님의 교회로 지속되는 데에 저 자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얼마전 익명의 교우님으로부터 편지를 한통 받았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이 지금의 제 심정을 너무나도 잘 피력하고 있기에 이 시간 읽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 드립니다.

 

저는 주님의 교회에 등록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밖에서 들은 이야기도 있었고, 막상 등록하고 다녀보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나름으로는 신앙도 성장한 것 같고, 교회와 목사님과 구역 식구들과 모든 성도들이 큰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자랑은 그 안에 내재하시는 주님께 대한 자랑임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데 최근에 제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금년에 착공할 정신여고 강당 건축과, 내년 중반이면 떠나실 목사님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이기심에서 비롯된 근심, 걱정의 소리를 듣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속 남아 계셔서, 늘 신앙의 좌표가 되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뿐, 목사님의 하나님에 대한 서원을 우리는 당연히 더 우위에 두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러기에 저는 목사님의 결단을 존중하며, 정신여고 강당 건축도 한국 교회 건축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두손들어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일부에서, 정신여고 강당 건축이 끝날 때까지는 목사님이 계셔야 한다는 둥, 심지어는 목사님이 떠나시고 나면 교회에 동요가 있을 것이라는 둥, 지극히 인간적인 염려의 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저는 심히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입으로는 주님의 교회가 참 좋은 교회이고 이재철 목사님은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하면서, 막상 그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결국 눈에 보이는 교회와 상대적으로 다른 목사님보다 좀 나은 자연인 이재철 목사님만 보았기에 이런 염려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염려의 소리는 그 동안 목사님께서 일관되게 가르치신 내용과도 크게 배치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우리가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목사님의 결심까지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하고, 목사님께서 떠나신 후에도 정신여고 강당 건축은 물론, 교회가 전혀 동요없이 더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줄 때, 비로소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했다는 증거가 드러날 줄 믿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일부의 염려처럼, 목사님 떠나시고 난 다음 교회가 흔들린다면 주님의 교회를 주목하고 있던 교계로부터 "그러면 그렇지 주님의 교회인들 별 수 있나" 이런 비웃음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우리 교회 교우님들이 이재철 목사님만 보고, 이재철 목사님을 있게 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우를 정말 범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저는 이 익명의 교우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교우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 이 분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이미 이분과 같은 믿음을 갖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지난 9년동안 여러분들께서 이 부족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지 눈물겹도록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사랑이 없었던들 오늘의 저는 존재치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누구보다도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해도 우리는 주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그 분을 중심에 모시고 그 분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만약 제가 주님의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변함없이 존속케 하기 위하여 떠남으로 인하여 이 교회가 흔들린다면, 이것이 어찌 주님의 교회일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어찌 믿을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정말 살아계시고 진정 이 교회의 주인이 되신다면, 저처럼 부족한 사람과는 비교가 안될 훌륭한 분을 이미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 왜 훈련시키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 분을 도구 삼아 어찌 이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우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만에 하나라도 여러분의 심중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인간 이재철이 더 깊게 각인 되어 있다면, 이제부터 1년 내에 그것을 지워야만 합니다. 주님보다 인간 이재철을 더 깊이 새기는 것은 여러분과 저 자신을 동시에 망치는 일입니다. 자금부터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내년에 새로 오실 목사님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맞을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때 우리의 교회는 진리와 생명과 사랑과 봉사와 개혁과 헌신이 멈추지 않는 영원한 주님의 교회가 될 것이며, 우리 모두는 썩어 가는 이 도시 속에서 참된 생명의 밀알이 되는 진정한 산중파 사람들―곧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참 제자 요한이 될 것입니다.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우리의 고백을 기뻐 받으시고, 그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친히 세우시사, 지난 9년 동안 주님께서 한결같이 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 주셨던 것을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일 수 있도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을 중단치 말게 하옵소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우상시되고 사람이 주인 되는, 사람의 집단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심령을 붙들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교회가 언제나 진리와 생명, 사랑과 헌신, 봉사와 개혁이 넘치는 주님의 교회 되게 하시고, 모든 교인들이 썩어 가는 이 세상에 생명의 불씨를 던지는 산중파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1년 후에 오실 새목사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시고 주님의 방법으로 멋지게 훈련시키시고 계심을 믿사오니, 그 분과 더불어 이 주님의 교회가 21세기 이 땅의 역사를 밝히고 맑히며 선도하는 빛과 소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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