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9 그들이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갑자기 날뛰므로 웃사가 손을 뻗어 궤를 붙들었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웃사에게 불이 일듯이 노하셔서 웃사를 치셨는데 웃사가 궤를 손으로 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웃사는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11 여호와의 벌이 웃사에게 내리자 다윗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오늘날까지 베레스 웃사라고 합니다.
(대상 13:6-11)

🔍 [관찰]
다윗은 왕이 된 이후 사울 왕 때 잃어버린 언약궤를 가져오려 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살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윗성, 곧 예루살렘까지 약 13~15km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수레를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고핫 자손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인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언약궤를 되찾아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을 섬기려는 열정이 있다고 해서 그 방법까지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좋은 의도만 가지고 행동해서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의욕과 열정만 앞세우기보다 말씀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적용]
말씀에 기반하지 않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판단에 의한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조심해야겠습니다. 매년 해왔다는 이유로 주님께 여쭤보지 않고 반복적으로 하는 일들이나,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멈춰야 할지 하나님께 묻기보다 나의 경험에 의지해 행동하는 모습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중요한 절차를 간과했던 것처럼, 신앙의 본질을 잊고 형식에 치중하거나 사랑하는 마음 없이 율법이나 관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도 경계해야겠습니다.

내가 익숙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닐 수 있음을 기억하며, 매 순간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가져야겠습니다.

🙏 [기도]
주님, 성경 말씀을 그대로 현재의 삶에 적용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허락하여 주소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주님께 기도함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하소서.

관습이나 율법에 얽매여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시고, 나의 열정과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
1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와 말했습니다. “우리는 왕의 혈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왕이었을 때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신 분은 왕이셨습니다. 또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 왕에게 오자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그들과 약속을 맺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세웠습니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다윗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역대상 12:1~3, 9)

🔍 [관찰]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헤브론으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유다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높이거나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먼저 선포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다윗의 모습을 지켜본 유다 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계시를 통해 그 자리에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아니지만,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며 명성을 얻었던 일, 골리앗을 쓰러뜨린 일, 그리고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직접 사울을 제거하지 않았던 일 등을 보며 하나님께서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을 인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하신 약속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적용]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다윗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이 말씀을 보며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높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과정을 통해 세워가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스스로 높아지려고 애쓰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인정받고 세워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 속에서 나의 이름을 높이려고 애쓰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뜻대로 살아가기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에 나의 열정과 시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 [기도]
주님,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좇으며 살아가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제 이름을 높이기 위해 애쓰기보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좋은 사람이 되게 하시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에 저의 열정과 시간과 삶을 기꺼이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오늘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주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
(역대상 8:40~9:1)

8:1 베냐민은 맏아들 벨라, 둘째 아스벨, 셋째 아하라
8:2 넷째 노하, 다섯째 라바를 낳았습니다.
9:1 이스라엘이 그 족보에 올랐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됐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죄를 지음으로 인해 포로로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 [관찰]
성경을 보다 보면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각각 어떤 목적으로 기록되었는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성경 일독을 할 때 사무엘상·하와 역대상·하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왜 비슷한 역사를 반복해서 기록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각 책이 기록된 배경과 목적을 살펴보니, 사무엘상·하는 사울과 다윗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역대상·하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대기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반복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떤 뿌리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인지 다시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적용]
역대상 1장부터 8장까지는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내용이 계속 이어져 말씀을 묵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기록된 배경을 생각하며 다시 보니,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이 누구이고 어떻게 시작된 민족인지, 자신의 뿌리를 다시 상기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저도 족보를 보며 큰 감흥을 받지 못했는데, 최근 고조부께서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신 일을 계기로 ‘우리 조상님들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족보와 조상님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나의 현재 모습은 부모님의 삶뿐만 아니라 그 위 선조들이 살아온 삶의 영향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조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도 이어져 온 신앙의 계보가 있습니다. 증조부로부터 시작된 신앙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돌아보고, 지금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앞으로 나의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신앙이 나의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선한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주님, 선조들의 삶과 신앙이 지금의 저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 처럼, 저의 신앙이 자매와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전해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
164 주의 의로운 법으로 인해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합니다.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넘어뜨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시편 119:164~165)

🔍 [관찰]
시편 119편의 말씀을 한 주 넘게 묵상하다 보니 비슷한 구절들이 많아 어떤 말씀을 묵상하면 좋을지 여러 번 본문을 살펴보게 되었고, 그중 164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의 의로운 법으로 인해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하루에 몇 번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구체적인 계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편 기자는 왜 이런 습관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을 더욱 찾게 된 것도 있겠지만, 삶의 원칙 없이 살아가다 보면 세상에 휩쓸리기 쉽기에 매일의 신앙을 붙잡아 줄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용]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며 큐티 말씀을 듣는 습관, 책상에 앉아 말씀을 묵상하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습관, 주중 신우회 모임에 참석해 말씀을 나누려는 습관을 잘 만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밤에는 이런 습관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기 전에 아침에 묵상한 큐티 말씀을 다시 보려고 노력해보기도 했고, 신앙 서적을 읽으려는 노력도 해봤지만 좀처럼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왔기에 나에게 주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휴식의 시간이 꼭 주님과 멀어지는 시간이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편 기자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쁨이 되어 나의 지친 몸과 영혼을 채워주는 휴식과 같은 시간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또 하나의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의 영혼을 회복시키는 기쁨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밤에도 주님을 찾는 거룩한 습관이 만들어지길 소망합니다.

🙏 [기도]
주님, 매일 밤 주님을 생각하고 하루를 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는 거룩한 습관이 생겨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게 하시고, 주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시간이 지친 몸과 영혼을 채우는 기쁨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며,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내 안에 샘솟기를 소망합니다.

살아계시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본문]
121 내가 의롭고 정의를 행했으니 나를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내주지 마소서.
122 주의 종에게 평안함을 보장해 주시고 교만한 사람들이 나를 억압하지 못하게 하소서.
123 내 눈이 주의 구원을 찾다가, 주의 의의 말씀을 찾다가 희미해졌습니다.
124 주의 종을 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다루시고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125 나는 주의 종입니다. 내게 통찰력을 주어 주의 교훈을 깨닫게 하소서.
126 여호와여, 주께서 행동하실 때입니다. 주의 법을 그들이 깨어 버리고 있습니다.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합니다.
128 그러므로 주의 모든 교훈을 의롭다고 여깁니다. 나는 모든 잘못된 길을 미워합니다.
(시편 119:121~128)

🔍 [관찰]
오늘 「생명의 삶」 해설 내용 중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세계관의 전쟁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시대의 유물로 조롱하며, 스스로 신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 당시에는 세상의 메시지가 진리처럼 느껴지고, 이것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정치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고, 대중문화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이끄는 세상의 메시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성경적인 가치보다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어떤 시대든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욕망이 사람들 안에 잠재되어 있었기에, 시편 기자도 이러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외롭게 싸워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지치기도 하여 주님께 도우심을 구한 것 같습니다.

[적용]
그 당시에는 진리처럼 여겨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지고, 더 이상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성경은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고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삶의 기준점이 되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대의 유행에 따라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주님을 찾고 그분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성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기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기 위한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세상의 메시지가 아무리 강하게 들려오더라도 그것이 진리인지 분별하고, 금보다 순금보다 주의 말씀을 사랑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아야겠습니다.

🙏 [기도]
주님, 세상의 메시지에 매혹되지 않게 하시며 오직 주의 말씀에 집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붙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의 흐름에 현혹되지 않게 하시고, 주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는 마음을 부어주소서. 세상의 소리에 흔들릴 때마다 말씀을 통해 무엇이 옳은 길인지 분별하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힘입어 그 길을 담대히 걸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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