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교회 주일낮 예배/고린도후서 5:16∼21/ 설 교 자 임 영 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1998. 7. 19)
 

  여러분이 복음서를 읽어보시면 예수께서 당시에 만나고 함께 지내신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지식층이나 권력을 가진 지도층이 아니고, 오히려 그 당시 사회의 풍습과 제도에 의해 밀려난 사람들이며, 그 당시 극히 형식화된 종교적 기준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열거해 보면 세리, 창녀, 귀신들린 사람, 나병인, 각종 신체적 장애인, 각색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을 만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시의 종교와 사회에 의해 배척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지도층 인사들의 이상과 상상대로 연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당시에 만난 사람들은 정죄되어 희망 없이 막장 인생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막장 인생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정죄되어 희망이 없는 그들 자신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되고 하나님에 의해 새로 준비되고 있는 새로운 삶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라고 기뻐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외인 부대를 상대로 몸을 팔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끝이라고 생각하고 좌절하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삶을 하나님을 위해 내어놓고, 자신들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에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경험한 새로운 삶의 내용이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은 문밖에 서서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만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인 동시에 나 한사람만이 독점할 수 없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고, 치유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와 인격적인 사귐을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시는 생각은 심판이 아니며, 평안과 소망이십니다.

  어느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서 일하는 여의사 한 분이 대학생 시절부터 복용해 오던 마약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되어 병원에서 사임하고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저녁 자기 집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는 호수로 가서 뛰어내릴려고 할 때 "죽기 전에 기도하라"는 세미한 음성이 갑자기 그의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는 즉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오 하나님 저를 구해 주세요"라는 짤막한 기도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 짧은 기도였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절규였습니다. 잠시 후 어떤 손길이 그를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면서 그 동안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움이 다 없어지고 온 몸이 날 듯이 가벼워졌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마약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기뻐서 집으로 돌아와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여의사는 절망에서 심판의 하나님이 아닌, 그를 위해 새 삶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은 현재와는 다른 새로운 자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새로운 자기는 하나님과 화해되고, 용서되고, 치유된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다시 여의사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후 그 여의사는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는 교육과 훈련을 받아 그의 생을 과거의 자기처럼 마약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여의사의 경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자아상은 마약으로 파멸해 가고 있는 여인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러한 것이 극복되고, 치유되어 다른 사람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함께 초대되어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상(Image)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자아상은 눈물, 한숨, 시기, 질투, 미움에서 몸부림치다 죽음으로 끝나는 허무한 생이 아닙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이미 극복되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도록 초청 받고 있는 새로운 우리 자산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바라보며 그 미래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낡은 것에 안주할려는 옛 사람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과감히 옛 것을 벗어버리고 새것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친교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밖에 있을 때의 교제는 주로 세상적인 동기인 정치, 경제, 자연, 학연, 혈연과 같은 이해관계에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러한 것을 넘어섭니다. 성만찬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친교는 모든 세상적인 조건을 초월해서 한 형제, 자매로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매일 갖는 하나님과 대화로서 기도의 교제는 우리를 거짓된 합리화에서 벗어나게 하고 옛것에서 새것의 삶으로 계속 나아가게 하며, 하루하루 우리 자신을 초월해서 하나님께 순종해 가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형제, 자매와 갖는 믿음의 교제는 우리들 서로가 안위와 위로를 받게 하고, 주님의 지체로서 일치를 이루어 가게 합니다.

  우리의 찬송가 525장은 성도들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귐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 찬송은 생활이 어려운 교회에서 목회 하던 목사님이 큰 교회의 목회자로 초빙되어 이삿짐을 싸던 중,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이 작은 교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부인의 눈물어린 권고에 감동을 받아 그 교회에서 계속 목회 하기로 결정하고 그 기쁨과 깨달음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 앞 한 기도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안에서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 동락하는 중 위로를 나누네,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서 교통하면서 또 다시 만나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삶이 아닌 섬기는 삶으로 삶의 방식이 바뀌어 갑니다.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삶의 의미, 기쁨, 희망을 발견해 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현실 긍정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림으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섬김이라는 삶의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본을 보여 주신 삶의 모범이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예수님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6∼8)  세상의 권위는 자리와 명칭에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권위는 그러한 것에 있지 아니하고 섬김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김을 받는 자리로 부르지 아니하시고, 그 자신이 섬김의 자리에 계시면서 우리를 그 자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하나의 삶의 유형은 금욕적이 아닌 단순성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도록 하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게" 받아 드립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부요하게 살아갑니다. 그 부요함은 창고에 쌓아 둔 재물로 인함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해 가는 고귀한 경험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해 가는 경헙입니다. 이 자유와 관련된 기도문 하나를 소개하면서 설교를 맺겠습니다.

      오 예수님 나를 해방시켜 주옵소서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높임을 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명예롭게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칭찬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다른 사람 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낮아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멸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책망의 두려움으로부터,

      비방의 두려움으로부터

      잊혀짐의 두려움으로부터,

      실수의 두려움으로부터,

      조롱의 두려움으로부터.

      ― 마더 테레사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이런 새로운 경험이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시작됩니다. 그러한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피조물의 삶으로 부름 받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 현실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 피조물의 삶을 계속해서 형성해 가야 합니다. 이 삶은 부활의 시간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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