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교회/주일낮 예배/마태복음 13:1∼9/설 교 자 임 영 수


하나님 나라의 위기(1998. 7. 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실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는 달라서 구체적인 사건을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이 육신으로 오셔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낡은 삶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으로 바뀌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은 역사를 만드십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그러한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입에서 나가는 말로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55:1011)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찾아오실 누구나 자신의 생의 역사의 과정에서 만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년기라는 생의 계절에 사는 어린이에게는 유년기까지의 생의 역사가 있고, 청년기나 장년기, 노년기에 있는 사람은 유년기 때보다 좀더 다양한 생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생의 역사가 어떤 경험의 역사였느냐에 따라 현재 사람의 모습이 됩니다.

사람의 생의 역사는 시대의 문화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생의 역사에서 사람은 긍정적 부정적 경험을 갖게 됩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의 역사가 긍정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요인이 많습니다. 문제는 현재 그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현재 그의 처지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지난날의 죄와 상처, 아픔이 치유 받은 상태일 그에게 지난날은 긍정적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할 그에게 지난날의 경험은 말하고 싶지 않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형성된 기존의 생의 바탕에 떨어지기 때문에 반응 역시 일정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러한 것과 관련이 됩니다. 본문 내용은 비유입니다.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서 맞는 위기 상황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시대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경험적 사건들을 가지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유의 표현들이 낯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유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길가에 뿌려진 씨앗의 경우입니다.

옛날 팔레스타인 지방에 있는 밭들의 대부분은 가운데 사람들이나 가축들이 지나 다니는 길이 있었습니다. 파종기에 씨를 뿌리면 씨앗들 중에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어떤 가능성도 나타내지 못하고 씨앗 자체의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이유는 오가는 많은 사람들과 짐승들에 의해 밟히고, 새들에 의해 먹히기 때문에 싹이 돋아 없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생각해 있는 삶의 유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일에 너무 얽매어 있는 삶입니다. 일상적인 것들에 너무 깊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에 얽매어 있을 하나님 나라가 자리할 있는 곳이 없게 됩니다.

다음으로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의 경우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던 밭들 중에 표면적으로 흙이 부드럽고 식물이 자랄 있을 같지만 부드러운 바로 밑에는 엷은 층의 넓은 바위가 깔려 있어서 씨앗이 싹은 나지만 뿌리를 내릴 없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밭을 연상할 문득 떠오르는 하나의 삶의 유형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살아가는 유형의 , 그렇지 않으면 이데올로기라는 편견에 완전히 심취해서 다른 어떤 진리도 배격해 버리는 절대적인 유형의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상황에서 역시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저는 소련 체제가 붕괴되고 얼마 안되어 러시아와 발틱해에 있는 나라를 방문했었습니다. 땅을 밟으면서 계속해서 자신 스스로 가졌던 질문은, 도대체 공산주의 80 역사의 의미가 무엇 인가였습니다. 현장에서 얻은 해답은 공산주의는 허구 자체라는 것이었습니다. 80년이 지난 역사의 현실은 황폐함이었습니다. 80년이라는 역사의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기간에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들은 민중학살, 인간성 파괴, 소수의 특권 계급 형성, 문화의 황폐, 경제파탄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하고 있는 역사 사건이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받아 드리지 않는 , 역사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말해 줍니다. 이것은 비단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거짓된 사상, 거짓된 종교적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박태선의 신앙촌에서 거의 반평생을 보내고 나온 사람들의 공통된 말은 헛살았다는 것과 속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생은 어디서 다시 보상받을 없었습니다.

다음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의 경우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생각해 있는 삶의 형태로 현실에서 많은 생의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사는 삶입니다. 생의 염려와 걱정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좋은 땅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사는 도덕적인 , 그렇지 않으면 때부터 소지한 착한 본성, 자기 나름대로 삶의 원칙을 정해 놓고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율법주의적 삶을 연상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의 의미는 그러한 것과는 거리가 멈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속에서 썩어 씨의 형체는 없어지면서 싹이 나고 줄기와 잎이 생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옛것의 형체가 없어지고 새로운 형체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해 , 육십 , 삼십 배의 열매를 맺을 있는 여건은 고난, 회개, 진지함, 묵상, 순종입니다. 그러한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변화,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미국 플로리다 플랜트 시티에서 있었던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965 여름 시에 사는 어느 가정에 일가친척이 모두 모였습니다. 새벽 두시에 갑자기 할머니가 식구 모두를 깨우더니 콜라 병과 코르크 마개와 백지를 준비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백지 위에 개의 성경 구절을 써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식구들은 할머니가 성경 구절을 말아 속에 넣고 코르크 마개로 막았습니다. 그날 아침 할머니와 모든 식구들이 해변으로 나가 무려 이백 개의 콜라 병을 파도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고, 또는 직접 찾아와서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콜라 병에 성경 구절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할머니는 1974 1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음달인 12월에 마지막 편지가 할머니에게 도착했습니다.

편지의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우스 부인께,

지금 촛불 아래서 편지를 씁니다. 우리 농장엔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남편은 트랙터가 전복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은 내게 명의 아이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큰애가 살이랍니다. 은행은 이상 대출을 거부하고 있고, 이제 우리에겐 덩어리 밖에 남은 없습니다. 눈이 세상을 뒤덮고 있고, 크리스마스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주님께 용서를 빌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강으로 나갔습니다. 주째 강이 얼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을 가져다가 얼음을 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구멍을 뚫자 콜라 하나가 떠올라 오더군요. 코르크 마개를 열고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안에 적힌 희망의 글귀를 읽었습니다. 전도서 9 4절의 말씀이 적혀 있더군요.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

당신은 히브리서와 요한복음서의 다른 구절들도 적어 놓았더군요.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내 주신 메시지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고난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 부디 우릴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지만 우리 모두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실 거예요.

오하이오 농장에서

지금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귀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말씀에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매일 매일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의 순간이 우리의 일상성의 삶에서 마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과거의 역사의 한때에 말씀이 육신으로 오셔서 직접 우리 가운데 빛으로 거하셨고, 지금은 말씀이 성령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영원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영원 가운데서 언제나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교회의 희망과 존재 의미는 말씀을 위탁받았다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 열쇠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말씀의 열쇠로 세상 사람들에게 닫혀진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 들어갈 있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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