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교회/ 주일낮 예배/시편 1 : 1∼6/설 교 자 임 영 수 목사님


인간의 길 1998. 8. 2.


 
먼저 동양의 옛 성현의 글 한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도(道)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촌스런 고집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화려한 나비가 되기 전 험상스러운 애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듯 자기의 근거를 파 들어가는 구도자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얼핏보면 그들의 차이는 얼마 안되는 것 같으나 나비가 될 때에는 그들의 차이는 한없이 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빨리 성공할 수 있는 길,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는 데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캐물으며 그 삶의 완성의 길을 찾아 나서는 젊은이의 모습은 왠지 시대를 역행해서 살아가는 것 같은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이 세상에서 그러한 젊은이는 다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고, 오직 약삭빠르고 줄타기를 잘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오늘 우리 시대에 보편화된 신념이며 인생철학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근거를 파 들어가는 구도자적 삶이 겉보기 촌스럽고 한심해 보여도 그들이 인생의 어느 경지에 올라서게 되면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인생의 행복이 진정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삶은 매우 귀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야 할 길 때문에 고심하게 됩니다. 특별히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 젊은이의 경우 그가 가야 할 길을 찾아서 가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길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길을 찾는 데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바르게 가고자 하는 사람은 지혜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이 시편의 말씀은 인간으로서 진정 가야 할 길을 묻고 있는 사람에게 그 길로 안내하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이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면 많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고 바른 길로 찾아 나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하는 방향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에 좀 촌스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하는 그 길을 따르면 그 결과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되고, 그렇지 않고 세속적인 길을 따르게 되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본문에 제시된 인간의 길은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 두 가지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먼저 소극적인 면으로 불의한 자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에 불의한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악인, 죄인, 오만한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고안해 낸 성공 방법, 행복의 길을 따르지 않으며, 그러한 바탕 위에서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부러워하거나 모방하지 않고, 그들과 삶의 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에 그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 전체를 나타내는 단어가 "좇다, 서다, 앉다"와 같은 동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사고의 출발점이 하나님이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그들의 길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성서에서 말씀하는 중요한 경고는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길은 그 길이 아무리 명예롭고 재물이 많이 따른다 해도 헛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그러한 생이 바람에 나는 겨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겨는 알곡이 아니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것의 움직임은 수평적입니다. 그러한 삶은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삶의 성취가 수반되지 않는 허무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적극적인 면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삶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야 할 진정한 길을 율법에서 찾으며 살아가는 삶의 형식입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율법은 단지 십계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 오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에서 바른 길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제시하는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닌 영생으로의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입니다.

말씀에서 길을 찾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 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이루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깊이 묵상할 때 영감의 말씀이 들려 옵니다.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갖고 있는 유럽 국가들을 여행할 때 관광 대상들이 대부분 옛 성이나, 성당, 교회입니다. 각 시대별로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지은 웅장한 성당 안에 들어가 보면 음미해 볼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어느 성당이나 교회 안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스테인글라스에 그려 있는 성화들입니다. 오랜 건물의 것은 먼지로 많이 더럽혀져 있기 때문에 잘 알아 볼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햇살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올 때 창문에 그려진 그림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성서를 오래된 성당의 창문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 정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도움 가운데서 묵상해 가지 않으면 지루하고 복잡한 사건만 접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깊이 묵상해 가면서 성령의 빛이 비췰 때 그 사건을 통해 말씀해 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들은 말씀에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아는 것으로 끝나면 의미 없습니다. 그리로 발걸음을 내 디뎌야 합니다. 그 길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가며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해 가는 데서 보여지는 길이 평탄하고 쉬운 길만은 아닙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가기가 어렵고 힘이 들고 고독이 수반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희망, 기쁨, 성취의 자족감이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한 길에서 형성되어 가는 삶의 모습이 본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에는 계절에 따라 열매가 열리고, 시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의 움직임은 수직적입니다. 그러한 나무는 시냇가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메마름이 없습니다. 햇볕이 내려 쬐이고 바람이 불어도 마르거나 날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견고하고 확실한 삶인가를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마른 잎사귀는 죽음과 심판의 상징입니다. 반면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생명·희망·성취의 상징입니다.

본문에서 의미하는 복(福)은 부·건강·성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형성되어 가는 삶과 관련됩니다. 본문에서 의미하는 복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시하는 길을 따라 형성되어 가는 삶 그 자체를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좀더 부언해서 말씀드리면 영생으로 지향해 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비록 거기에 고난이 따르고 고독이나 가난이 수반되어도 그러한 삶을 복된 자의 삶이라 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복된 자의 삶이 바로 그러한 생의 길을 걸어가는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그 길이 결코 넓은 길이 아니고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을 바르게 형성해 갈려는 사람, 생의 허무를 원치 않는 사람은 그 좁은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합니다.

우리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모범적인 한 기업인이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 나라 사람이면 누가나 잘 아는 유 일한씨입니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세계에 내놓을 만한 기업인입니다. 그는 큰 기업의 재벌 총수도 아니었고 어느 정당의 실세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한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간 작은 제약 회사의 설립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후세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은 기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성직자, 기업인, 정치인, 교육자, 예술인, 의사, 군인, 상인 등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거기에서 그가 걸어가야 할 의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가는 길입니다. 삶은 투기도 아니며 돈을 벌기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삶은 우리 각자가 형성해 가야 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삶을 바르게 형성해 가는 사람을 가리켜 복있는 자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전문직에 들어섰다고 해서 또는 사회적으로 평생 보장받는 지위를 확보하였다 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서부터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그가 가야 할 길이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오로지 전문인으로, 기능인으로서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인간의 길을 가는 전문인, 인간의 길을 가는 기능인으로서의 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인간의 길에서 우리의 삶이 형성되어 가기 때문에 여기서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이 야수의 모습이나,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형상대로 형성되어 가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해 가는 인생의 도상에서 우리 자신에게 수시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인가, 내가 지금 나의 삶을 바르게 형성해 가고 있는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진정 복된 자의 길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의 시편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갓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다.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 받을 그 때에 얼굴을 들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서지 못한다,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표준새번역)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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