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교회 주일낮 예배/마가복음 8:34∼38/설 교 자 임 영 수 목사님


자기를 부인하는 삶(1998. 8. 16)


 본문은 제자직의 의미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부정적인 것으로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긍정적인 것으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은 자기의 인격을 부인하거나 순교자로서 죽는다거나 회의주의자들처럼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주의적인 인간 본성의 경향에 따라 삶을 형성해 가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부인은 단순히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것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자기부인은 그 전에 반항하고 거부했던 그 어느 인격적 대상의 뜻, 권위에 복종해 가는 구체적인 행동과 관련됩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한 자기부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 복종을 위한 자기부인입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자기부인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원래 유대인들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를 지고 도시를 지나 자기 처형 장소에까지 가는 것은 로마에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신이 전에 거부하였던 권위에 굴복하고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에서 골고다까지 가신 것은 로마 정권에 굴복하고 복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대한 복종의 상징입니다.

예수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든지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같이 고통을 당하거나 십자가에 달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조건 없이 복종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뜻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십자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독특한 삶의 형식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며, 그렇지 않고 자기 중심적 삶에서 자기를 섬기며 살아가는 삶은 궁극적으로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멸망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은 "잃다"와 "얻다"를 생명과 관련시켜 적절하게 대비시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잃다는 자기부인, 또는 자기 포기를 뜻합니다. 얻기 위해서 잃어야 한다는 역설적 진리를 말씀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그러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삶의 가치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것의 가치는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가치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자기부인을 시금석으로 한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는 다른, 생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그것을 희망 가운데서 성취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이득이 되는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아무 낙이나 즐거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그러한 삶에서 오는 불이익·소외·핍박에 대해서 원망이나 후회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시대에서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감사하게 여기며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내 놓고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모든 사람 앞에서 시인하며 사는 삶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기부인이나 십자가의 삶은 심한 거부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그러한 삶 자체가 그들의 삶의 방식에 방해물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며 호감을 주는 것은 자기실현, 자기성취, 자기완성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기부인이나 자기실현의 의미는 다 왜곡된 뜻으로 전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실현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자기 부인은 자기 비하·자기경멸·자기억압과 같은 뜻으로 이해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게 성숙되어 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편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자기실현, 자기완성은 철저히 자기를 중심으로 한 삶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극도의 이기적인 인간, 쾌락과 욕망에 사로잡혀 영원한 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태에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의 위기는 두 가지 다 왜곡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부인과 자기실현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진정한 자기실현은 자기부인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진정한 자기부인은 자기실현의 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실현된 삶을 살아간 성인·성현들은 모두 자기부인을 통한 자기실현의 생을 살아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둘은 갈등과 대립이 아닌 한 길이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부인을 시금석으로 한 십자가의 삶의 고귀성과 아름다움을 이 시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중 앞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에게 충실한 것일까?

우리는 공공 생활 안에서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까?

괴짜라고 보이고 싶지 않아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교 생활에서도 예수님에게 충실한가?

어떤 분이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그는 "그렇습니다. 다만, 남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입니다."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자신의 신앙은 사교 생활의 기쁨을 즐기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난처한 처지를 겪지 않기 위해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감추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사업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에게 충실한 것일까?

사업상 귀찮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 세상의 기준을 따르느냐,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어떨지를 묻지 말고 단호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 따라 사느냐?

이 물음은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저마다의 양심에 따라 결정할 도리밖에 없다.

역시 윌리엄 바클레이의 말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사람에 따라 각양 각색이다. 돈·지식·명성·지위·큰발견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느 대학의 휴게실에서 장래 문제에 대해 대화를 주고 받았다. 누군가가 "너희들은 장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학생들에게서 여러 갈래의 답변이 나왔다. 훌륭한 학자, 선수, 대학 교수 등 멋진 대답이 많았다. 그때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섬세한 한 남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다른 것은 제쳐놓고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성인을 정의하면, 다음의 셋으로 가른다.

첫째, 성인이란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 계시는 사람이다.

둘째, 성인이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쉽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셋째, 성인이란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빛이 빛나게 하는 사람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인생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일이야말로 인생의 참다운 목적인 것이다.

계속해서 그의 말을 인용합니다.

어떤 공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전기를 절대 쓰지 못하게 했다.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충분히 전기가 씌어져도 마땅하다고 생각될 만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주간 동안에 나는 낙오하는 사람을 싫증날 정도로 보아 왔기 때문이야."

인생은 끝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인생에는 안심할 수 있는 시기는 한 번도 없다.

"언제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 자유의 대가이다."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 바로 지속적인 자기 부인의 삶입니다. 자기부인 가운데서만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자기부인에 대한 몇 가지 정의를 내립니다.

(1) 자기부인은 삶의 중점을 자기에서 하나님께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2) 자기부인은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묻고 복종해 가는 것입니다.

(3) 자기부인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더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4) 자기부인은 강요에 의한 포기가 아닌 선택을 전제로 한 자발적인 포기입니다.

(5) 자기부인은 이웃과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입니다

(6) 자기부인은 신앙의 모험의 길입니다.

(7) 자기부인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며, 아울러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8) 자기부인은 십자가의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죽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삶을 살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의 목적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시며 진리시오, 생명이십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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