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말씀 / 1998년 / 10월 18일


구원 받은 자의 노래 설 교 자 임 영 수

말씀 : 시편 107편


시편 107편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편에 나타나 있는 어려움과 시련은 전쟁, 감옥 생활, 질병, 폭풍의 바다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에서 패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질병과 바다의 폭풍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어려움과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해 보았을 때 자신들이 그러한 상황에 결코 홀로 내버려져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혀 불가능한 절망의 상황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 경험한 한가지 공통된 것은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려는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시편 107편의 시작입니다. 이 시편에서 찬양과 감사의 말씀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

동서 남북 사방에서, 주께서 모아들인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1∼3)

미적 감수성이 탁월한 화가가 이 시편에 나타나 있는 고난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각기 배경과 등장 인물이 다른 네 장면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상상으로 네 장면의 그림을 생각해 가면서 본문의 중심 내용으로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째 장면이 4∼5절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사막입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전경은 어디에나 모래밖에 없습니다. 나무도 풀도 식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래를 움직이는 바람소리가 간신히 들릴 뿐, 모두가 침묵뿐입니다. 먼 곳에서 한 그룹의 무리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의 옷은 먼지로 덮여있고 머리는 바람에 날려서 흩어져 있고 얼굴은 햇볕에 타서 검어졌고, 눈은 충혈되어 있으며, 입술은 말라서 터져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배가 고파 허기가 져있고 갈증으로 인하여 속이 타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까지 헤매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첫 번째 장면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에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4∼5)


이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견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희망의 분기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6∼7)

두 번째 장면의 그림의 소재는 10∼16절의 내용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감옥의 내부입니다. 그곳은 어둡고 우울한 장소입니다. 죄수들이 착고를 차고 차갑고 축축한 돌벽에 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간수들은 잔인하게도 죄수들을 차고 때립니다. 그들의 이 암울한 상황이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살며,

고통과 쇠사슬에 묶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셔서

그들을 낮추셨으니,

그들이 비틀거려도 돕는 이가 없었다"(10∼12)

이 암울한 상황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때 갑자기 감옥이 흔들리며 놋대문이 부서지고 쇠빗장이 꺾였습니다. 이 두 번째 장면의 희망의 분기점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은 그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

어둡고 캄캄한 데서 건져 주시고

그들을 얽어 맨 사슬을 끊어 주셨다

주께서 놋대문을 부수시고, 쇠빗장을 깨뜨리셨기 때문이다"(13, 14, 16)

그림의 세 번째 장면은 17∼22절의 내용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매우 처참하고 불쌍한 장면입니다. 거기에 온갖 질병으로 아픈 사람들이 여기 저기 널려져 누워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아파서 음식을 보고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여기 저기서 신음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의 처참한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반역의 길을 걷고 죄악을 저지르다가

고난을 받아 밥맛까지 잃었으니

이미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17∼18)

역시 이 장면의 그림에서도 희망의 분기점이 있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고,

그들을 멸망의 구렁에서 끌어내어 주셨다"(19∼20)

마지막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소재는 23∼32절의 내용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바다입니다. 섬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은 망망대해입니다. 거기에 고대의 돛단배들이 정상적인 항로를 따라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지는 어딘지 잘 모릅니다. 갑자기 멀리서 폭풍 구름이 나타납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하늘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바람이 더 강해집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며 파도가 크게 일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배 안에 있는 누구도 불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폭풍우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확신에 찬 모습으로 일상적인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공포가 그들을 둘러싸기 시작합니다. 뱃사공들은 동료들의 얼굴에서 공포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립니다. 금방이라도 그 배는 부서져서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공포로 가득 찬 분위기가 본문에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배들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바다 깊이 잠긴다

그런 위기에서 사람들은 얼이 빠지고 간담이 녹는다

그들은 모두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흔들리니,

그들의 지혜가 모두 쓸모 없이 된다"(26∼27)

다시 한 번 이 시편의 중심된 내용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

폭풍이 잠잠해지고, 물결도 잔잔해진다

사방이 조용해지니 모두들 기뻐하고

주님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다"(28∼30)

그리고 나서 시편 기자는 이 네 번째 그림의 결론을 덧붙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백성이 모인 가운데서 그분을 기려라

장로들이 모인 곳에서 그분을 찬양하여라"(31∼32)

사막이나 감옥, 병상이나 풍랑. 이는 바다는 모두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우리 인간의 경험의 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한 우리의 경험은 좌절·절망·우울·고독·공포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희망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경험들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의 삶을 포기케하고 생을 비관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결론은 사막에서, 감옥에서, 병상에서,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막에는 시원한 물과 오아시스가 있고, 캄캄한 감옥 밖에는 상쾌한 공기가 있는 들판이 있으며 폭풍의 바다에는 잔잔한 물과 안전한 항구가 있습니다. 그러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 위대한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혼자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절망적인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선하심,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때 있었던 일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죄 없는 자유인들이 독일의 유대인 학살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피눈물을 뿌리고 죽어가던 그 현장에서,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피맺힌 절규를 통해서 외친 질문이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입니다.

어느 날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수용소 벽을 검사하다가 한 쪽에서 뜻밖에 낡은 조각으로 쓰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고 깜짝 놀라며 그 벽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인 것 같습니다. 그 찬송가의 가사 내용은 우리 역시 잘 아는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두루마리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네.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할 수 없겠네."입니다.

이 놀라운 기록 앞에서 아연실색하여 바라보던 병사의 눈길에 그 아래에 조그맣게 쓰여진 글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God is here.였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이 여기에 계십니다.'입니다. 우리의 생의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하나님은 여기에 계시다.'입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은 사막의 생활에도 함께 계시고, 옥중에도 함께 계시고, 병상에도, 풍랑이 이는 바다에도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잠잠히 있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는 생의 어려움 앞에서 상상을 초월하리 만큼 침착하게 합니다.

요한 웨슬레의 일화 가운데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웨슬레가 미국에 집회를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중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풍랑 가운데서 사람들이 서로 살겠다고 아우성 칩니다. 풍랑과 아우성이 뒤범벅이 된 가운데 어디에선가 은은하게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웨슬레는 그 찬송 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가 보니 배의 갑판 위 한 모퉁이에서 몇몇 명의 여자들이 모여앉아 얼굴에 아무런 불안한 빛이 없이 매우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라비안 신도들이었습니다. 웨슬레는 거기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 사건은 웨슬레의 생에 또 한 번의 거듭남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현실에서 사막·감옥·질병·폭풍의 바다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해 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생의 경험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예배하기 위해 모인 것도 그 구원의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예배는 복을 받는 수단이라기 보다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드리는 감사의 응답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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