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말씀 / 1998년 / 11월 15일



겨울이 오기전에-인생의 가을 설교자 : 임 영 수

말씀 :  디모데후서 4 : 9∼22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그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겨울이 오기전에 자기에게로 오라는 당부와 함께,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올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는 이미 인생의 겨울인 노년기에 있었고, 자연의 계절로는 겨울을 얼마 앞둔 시기에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두꺼운 겉옷이 필요하였고 인생의 겨울과 다가오고 있는 순교의 시간을 내다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그에게 필요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그러한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본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가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겨울 전의 계절인 가을에서 겨울을 내다보며 다가오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준비에는 단지 계절적인 준비만이 아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위한 준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지만 한편 현실에서 앞으로 다가오는 자신의 미래의 시간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삶입니다.

바울이 내다본 그의 미래는 죽음이 아닌 죽음의 장벽 뒤에 있는 영원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영원의 시간에 그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현재의 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허무가 아니고 영원으로 잇대어지는 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현재는 더욱 소중했습니다.

이러한 진실은 바울에게만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한 순간 순간을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우리의 생의 계절을 놓치지 않고 보다 충만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자연계에 사 계절이 있듯이 우리의 생에도 사 계절이 있습니다. 자연계의 사 계절에 각각 그 특성이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의 계절에도 그 나름대로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자연의 봄의 특성이 새롭게 태어남과 성장이라면 인생의 봄 역시 태어남과 성장이 그 특성입니다. 자연계의 여름이 열매의 계절이면 인생의 여름 역시 열매와 결실을 위한 준비의 계절입니다. 여름 다음에 오는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며, 그 다음에 오는 겨울은 모든 것을 마감하는 휴면의 절기입니다. 인생의 가을, 겨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는 생의 봄에 사는 분·생의 여름·가을·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계절적으로 좀 늦었지만 가을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생의 계절 가운데 가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인생의 가을은 새로운 적응의 계절입니다. 이 시기는 생의 봄, 여름과는 달리 더 이상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며 생의 겨울을 내다보는 시점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새로운 적응이 필요합니다. 이 시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갈등을 극복해 가기 위해서는 철저히 현실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젊은 시절과 같이 이상과 꿈을 갖고 살아갈려고 하면 많은 갈등을 갖게 되고 그러한 갈등은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져오게 됩니다.

현실적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자신의 생의 계절에서 생의 봄과 여름을 상실해온 사람의 경우 생의 가을을 현실적으로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생의 가을을 현실적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으려면 그 전 계절을 상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생의 가을을 원만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일수록 생의 가을에 와서 나름대로 소유한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소유는 물질적인 것이라기 보다 정신적인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을 원만하게 받아온 사람, 젊은 시절 자기 자신을 바르게 실현해 온 사람인 경우 생의 가을을 받아드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드리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은 자기가 성취하지 못한 이상이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과거나 미래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으로 인생의 가을은 또 한 번의 선택의 시기입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선택이란 새로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진행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정리해야 할 것은 정리를 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전연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은 하되 어디까지나 자신의 남은 생을 보다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그러한 선택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일의 선택도 있을 수 있고, 젊은 시절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는 선택도 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 박사는 어느 날, 한 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부인은 영국의 글래스고우의 유명한 여학교에서 교사일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교육계에서 명예있는 오랜 경력을 완수하고 은퇴하였습니다. 그 편지에 의하면, 그는 신약 성경을 그리스 말로 읽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다가 이제는 은퇴하였으므로 그럴 시간이 있다고 하면서, 학생으로서 바클레이 박사의 고전어 강의 시간에 참석하여도 좋겠는가라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바클레이 박사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부인을 맞이하는 것은 나의 기쁨이며 명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새 학기부터 바클레이 박사의 강의에 다른 젊은 학생들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바클레이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배우는 일에 벌써 늦었다고 할 필요는 없다."

다음으로 인생의 가을은 책임의 시기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의미와,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자연계에 가을에서 우리는 모든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산이나 들에 있는 각종 식물들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자기의 열매와 색깔을 나타냅니다. 봄·여름에 잘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들도 가을이 되면 자기의 고유성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이러한 현상을 인간의 생의 책임과 정체성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은,`사람은 중년기에 자기의 얼굴 모습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중년기에 그 사람의 얼굴 모습은 지금까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가을에 와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거나, 책임전가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성숙입니다.

어느 성형외과 의사의 글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자기에게 성형수술이 잘못되어 고치러온 한 부인이 있었는데, 그의 얼굴 모습은 이 십대의 젊은이인데 그의 몸매와 손은 중년 부인의 것이었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부인은 중년이라는 자신의 생의 현실을 받아드릴 수 없는 정신적인 깊은 사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절은 생을 보다 단순하게 깊이 있게 살아가야 할 시기입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다가 어부 시몬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모습이 매우 피곤하고 허탈한 것을 보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깊이 있게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깊은 신앙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생의 계절에서 보다 생의 가을에 깊이 있는 신앙 생활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가을에 찾아오게 되는 정신적 공허와 허무를 극복해 가기 위해서입니다.

자연계의 가을에 모든 생태계는 거의 다 충만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맞이하는 생의 가을은 그것과는 반대입니다. 인생의 가을은 쓸쓸함·외로움·정신적 공허·허무라는 원치 않는 손님이 찾아오는 계절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들을 잘 극복해 가기 위해서는 영적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가을에 영적으로 잘 충전되지 않으면 생의 겨울을 맞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말씀의 묵상과 영적 독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의 가을을 보다 풍성하게 살아가는 지혜는 생의 관심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데 두는 것입니다. 유럽에 아들러라는 유명한 정신의학자에게 어느 날 중년부인이 찾아와서 자신에게 찾아온 우울증의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들러 부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그에게 일 주일 분의 약을 지어주면서 그가 지켜야 할 한 가지 삶의 원칙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약을 먹으면서 하루에 한 가지씩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된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돌아가서 의사의 지시대로 충실히 약도 복용하고 하루에 다른 사람을 위해 선한 일 한 가지씩 했습니다. 한 주 후에 부인은 아주 명랑한 얼굴을 아들러를 찾아와서 자신의 병이 다 나았다고 하면서 약의 효과를 감탄했습니다. 그때 아들러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부인, 부인의 병이 나은 것은 약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그 약은 소화제에 불과하고, 부인이 나은 것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관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의 계절을 후회 없이 완전하게 향유해 갈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현재 자기가 있는 생의 계절에서 다음 계절로 넘어설 때에는 후회·갈등·두려움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의 계절을 완전하게 후회없이 실현해 가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것과 죄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의 생의 방향을 바르게 설정해 가지 못하게 하고, 허무한 것, 무의미한 것에 집착하게 하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에는 언제나 후회·허무·갈등이 따라 다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상실한 생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용서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씻어내고, 우리의 허무와 후회를 씻어냅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에 대한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은 어느 한 생의 계절만이 유일하고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의 모든 계절이 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의 계절은 다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의 각 계절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신의 생의 계절을 다 살지 못하고 질병으로, 불의 사고로 생의 과정이 단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생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마지막 부활의 때에 다 보상됩니다.

자연계의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며 수확의 계절입니다. 가을이 되면 아무리 생각이 무딘 사람도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생을 돌이켜 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한편 인생의 가을에서 결실과 수확의 의미는 적응·선택·책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깊이 있게 살아가야 할 계절이라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신 이 생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생의 각 계절을 상실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생의 계절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따라야 합니다.

인간의 성숙은 어느 한 계절만을 가지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성숙은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한 생의 전 과정에서 저는 생의 가을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긍정적인 면에서나, 부정적인 면에서 가을을 우리를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뜻에서 가을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끝으로 김남조 씨의 `가을의 기도'를 읽어드리면서 저의 설교를 끝맺겠습니다.

"신이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못내 당신 앞에 벌받던 여름은 가고

기도와 염원으로 내 마음 농익는

지금은 가을

노을에 젖어 고개 수그리고

긴 생각에 잠기옵느니

여기 이토록 아름차게 비워진 나날

가을엔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신이여 가을엔

기도드리게 하옵소서

바람 속에서

바람에 불리우다 불현 듯 더워오는 눈시울

주체할 길 바이 없으니

이제금 홀로인 그분과 나와

가을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신이시여 가을엔

사랑하게 하옵소서

경건히 보다 경건히

요적의 눈빛으로 마주 바라보는

계절은 가을

신이시여 당신과 나 사이에

그분과 나 사이에

한 아름의 들국화를 두게 하옵소서

보라빛 흰빛의 소담스런 국화가

피어도 있고

피면서도 있게 하옵소서

가을은 돌아가는 계절

푸른 하늘 아래

나도 몰래 내가 멈춰서는 계절

문득 멈춰서서 다시 보면

나는 혼자인 나

가을은 제각기 혼자인 계절

신이시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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