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말씀 / 1998년 / 11월 22일


人生의겨울  설교자 : 임 영 수

말씀: 전도서 12 : 1∼8


지난 주일에 인생의 가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인생의 겨울 노년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생의 어느 한 시기에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질문은 생의 사계절 중에 체력이나 활동력이 점차 감퇴되어 가는 노년기에 더 마음을 차지하는 물음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년기는 생의 가치를 재검토하는 시기입니다.

자연계에도 이 계절에서 다음의 계절로 변해 가는 것이 매우 점진적이며 은밀한 것처럼 생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그 변화와 발전의 과정이 분명히 의식되지 않습니다. 생의 여름에서 가을을 맞이했는가 했는데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그 이유는 생의 가을에 이미 노년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의 가을에 노년기를 위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준비는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노년기를 맞이해서도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떤 분은 은퇴 후에 급속히 노쇠현상을 맞이하는데 그러한 경우 대부분 의미 있는 일을 갖지 못해서 입니다. 반면에 은퇴 후에도 계속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분은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가고 있는 경우입니다.

제가 캐나다 뱅쿠버에 갔을 때 60세 이상된 노년기를 맞이한 분들로 구성된 시온 성가단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주 목요일 그 시에 있는 컴유니티센타에 모여 한 시간 성경공부, 함께 점심식사, 오후 한 시간 합창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매해 상반기·하반기 공연회도 갖습니다.

그분들의 말에 의하면 주간에 그 날이 제일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그 시간은 자기들에게 이민 생활에서 유일한 의미라고 했습니다. 노년에 의미 있는 일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노년기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노년기에 들어서면서 생의 다른 계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두 가지 현저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먼저 개인적으로는 생리적인 변화입니다.

어떤 분이 자신의 노년기를 표현한 글 가운데 이러한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젊은 시절이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전연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밤마다 잠자리에 들어 그 다음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나는 귀는 서랍 안에, 나의 이는 컵 속에, 나의 눈은 책상 위에 놓여져 있곤 한다."

이 글은 생의 노년기에 경험하게 되는 상반된 의식을 표현한 것입니다. 노년기에 들어선 분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마음은 아직도 젊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반된 의식이 노년기를 쉽게 받아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지혜자도 노년기에 찾아오는 변화를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그 때가 되면 집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팔이 떨리고,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두 다리가 약해지고,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이는 빠져서 씹지도 못하고,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 질 것이며-눈은 잘 안보이게 되고,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소리가 적어질 것이며-귀는 잘 들리지 않게 되고,

우리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잠이 적어지고,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 질 것이며-귀가 어두워서 노래를 못하며,

높은 곳을 두려워 할 것이며-두려움이 많으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머리털이 희어지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젊은 시절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며,

원욕이 그치리니-육체적 정신적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다."

전도서 기자는 이러한 노년기를 곤고한 날이라 말씀합니다 전도서 기자가 노년기를 곤고한 날이라 말씀한 것은 육체의 기력이 쇠하여지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게 되고, 우울함을 더욱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자는 이러한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노년기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자를 의뢰하며 살아가면 생을 의미 있게 살게 되고 노년기 위기를 바르게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회적인 면에서 노년기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서 해방되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기에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는 동시에 아쉬움·후회·당황이 있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느 권사님 한 분이 젊은 시절 결혼을 해서 자신의 생을 거의 자녀 양육과 건강하지 못한 남편을 위해 다 보냈습니다. 한 여인의 헌신적인 자기 희생을 통해서 자녀들이 모두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갖게 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분의 생애에 무거운 짐이 되었던 남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그 분은 자신의 생의 모든 짐을 벗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자신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 때는 그의 생의 노년기였습니다.

생의 모든 짐을 다 벗고 이제부터 자신의 생을 살려고 할 때, 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노년기에 맞이한 자유는 그에게 아쉬움·허탈·초조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생의 위기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신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전도사 일을 위해서가 아니고, 남은 생의 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삼년간 오직 그 일에 몰두하면서 생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되었고, 그 후 그는 캐나다로 이민하여 시온 성가단을 창단해서 16년 동안 그 합창단을 지도해오고 있습니다.

이 권사님은 생의 곤고한 날을 젊은 시절부터 의지하여 오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보내고 있습니다.

인생의 노년기에는 아쉬움과 후회만이 있는 계절은 아닙니다. 인생의 노년기는 많은 경험을 재산으로 축적하고 있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가치를 재검토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인생의 노년기는 많은 학위를 가지고 있는 매우 값진 시기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그들의 공동체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노년기에 갖게되는 경험은 교실에서 지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며, 지금까지 삶의 현실에서 체험적으로 익힌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입니다. 값지다는 것은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젊은 신혼부부가 결혼 전에 육아법에 관한 책을 사서 육아 양육에 관한 지식을 다 습득했다고 해도, 생의 노년기을 맞이한 어머님의 경험에 비할 바 아닙니다. 인생의 노년기는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값진 시기입니다. 잘못하면 노년기에 이르러 지나온 과거를 모두 경멸해버릴 수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노년기는 더욱 아쉬움과 공허만이 남게 됩니다. 그러한 태도는 노년기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지나온 날의 경험들에서 값진 교훈들을 찾아내어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그것을 후세들에게 글로 또는 말로 유산으로 전수해 주는 것이 노년기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경멸하지 않고 값진 것으로 받아드리는 데서 노년기를 쉽게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한편 노년기에서는 지나온 날들에서 경험한 값진 경험의 유산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면서, 다가오고 있는 마지막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서야 할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 시간을 위한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 미국에 갔을 때 제가 도착하기 몇 주전에 있었던 감동적인 사건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노부부가 `캠핑 카'를 타고 미국 대륙을 여행하던 중, 어느 국립공원 높은 지대에서 폭설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내리는 폭설로 자동차는 눈에 갇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계속 눈이 내려 자동차 전체가 눈에 덥히게 되었습니다. 노부부는 자동차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약 일주일 후에 눈 속에 있던 차가 발견되어 구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노부부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평화롭게 숨을 거둔 그들 옆에 한 권의 일기장이 있었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노부부가 눈에 갇힌 시간부터 죽음의 시간을 내다보며 남편이 기록한 일기와 남편이 먼저 숨을 거둔 후 옆에 있던 부인이 대신 계속해서 기록한 일기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러한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남편은 우리가 눈에 갇히게 되면서 운명하는 순간까지 줄곧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지켜 본 남편의 모습에는 조금도 두려움의 빛이 없었고 매우 평화로웠으며, 안정되어 있었다. 드디어 남편이 숨을 거둔 후, 나는 그를 대신해서 일기를 쓰기 시작하다가 나 역시 나의 마지막 시간을 맞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눈 속에 갇혀 있는 고독한 노부부의 모습은, 고독하고 외로운 노년기를 맞이한 사람의 모습으로 상징화 시켜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드리고 다가오고 있는 영원의 시간을 내다보며 일기를 써 갈 수 있을 정도라면, 그야말로 훌륭한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모습 자체가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은 그가 살아온 생전체의 모습을 반영해 주는 시간입니다.

끝으로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드디어 그리스도 안에서 노년기를 맞이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려드립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간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 : 6∼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겨울, 인생의 노년기는 우리 모두의 미래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 시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노년기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야할 시간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십시다.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생의 모든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창조주 하나님 앞에 가서 서야 합니다. 그 시간이 갑자기 닥치기 전에 그 분을 깊이깊이 신뢰해가야 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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