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33 그들이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집 안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오는 길에 너희끼리 왜 논쟁했느냐?” 34 그러자 제자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35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면서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꼴찌가 돼야 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돼야 한다.” 36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데려와 그들 가운데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팔로 껴안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9:33~37)

[관찰]

예수님이 서로 큰사람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하시고자하는 메시지가 무엇일지 잠시 묵상해보았습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무엇인가 하기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많습니다. 또한 도움을 주어도 그 댓가를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비유를 통해 서로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 댓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주길 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모든 섬김을 지켜보고 기억하시겠다는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적용]

어제 신우회 모임 때 (불편한 말을 해야하는 순간) 협업하는 동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 자매님의 기도제목 중에 나눠주닌 내용인데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다른분들도 많이 공감해주셔서 모임 동안 중요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말 한마디이지만 어떤 마음이 담겨있느냐에 따라 비수같이 꽂히기도 하고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힘을 얻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나의 마음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말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도]

주님~ 사람 섬김의 범위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해주소서. 직장 가운데 동료들과 말할 때 살리는 말, 성장시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저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고 이 경험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신 사람 섬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6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논쟁하고 있느냐?” 17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말 못하게 하는 더러운 귀신이 들려 있습니다. 18 귀신이 한번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이가 땅에 거꾸러집니다. 그러면 아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이를 갈면서 몸이 뻣뻣하게 굳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1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믿음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데려오라.” (마가복음 9:16~19)

[관찰]

오병이어, 칠병이어, 변화산 사건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자신들도 기도하며 귀신들린 아이를 내쫓으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믿음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라고 질책하시면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 모두를 향한 말씀이었고 이 안에는 2가지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기도할 때는 주님께서는 능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갖고 해야하다는 의미를, 제자들에게는 주의 사역을 할 때는 (나의 경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결국 기도하는자나 치유하는자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으로 해야한다는 교훈을 주신 것 입니다. 

[적용]

최근에 말씀 나누는 단톡방에서 이런 성경 구절을 나눠주셨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 4:11) 

말씀을 전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지혜) 안에 있으며, 봉사의 능력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나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도]

본문에 나왔던 아이의 아버지, 제자들과 같이 믿음없음을 회개합니다. 아이를 고쳐주신 사건을 통해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중요함을 깨달았던 것 처럼, 내 삶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크기가 더욱 커져가게 하여주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의 권능을 받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주의 사역을 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능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이 있다.” 2 6일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3 예수의 옷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광채가 났습니다. 4 그리고 거기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5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세 개를 만들어 하나에는 주를,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6 모두들 몹시 두려웠기 때문에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7 그때 구름이 나타나 그들 위를 덮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의 말을 들으라!” 8 그 순간 그들은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9 산을 내려오시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사람 가운데에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마가복음 9:1~9)

[관찰]

예수님은 제자 3명(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산에 올라가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얗게 변화되어 광채가 난 옷, 엘리야, 모세와의 대화, 이곳을 좋아했던 베드로, 구름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각각 내포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묵상하면서 생각난 내용들을 적어봅니다.

하얗게 변화되어 광채가 난 옷은 죄씻음 받은 예수님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아 하얗게 변화되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 같고 엘리야, 모세와의 대화는 천국에 이르면 구원받은 모든 이들과 만나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천국의 작은 모습을 보며준 것이라 생각되었고 이를 본 베드로는 지속해서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구름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예수님이 그분의 아들임을 다시금 알려주신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적용]

신앙생활하며 항상 천국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들었는데 오늘 본문의 내용을 묵상하다보니 구원받은 이들을 시대와 상관없이 모두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천국에서의 삶이 심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조들을 모두 만날 수 있고 그분들이 살아왔던 시대와 어떤 신앙의 여정을 거쳐 구원받게 됐는지 나눔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다보니 주님과도 이야기할 것들, 여쭤볼 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내 삶의 여정 가운데 주님이 지켜주시고 도와주신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내 스스로 그 길을 찾을 수 있게 기다리시고 지켜보신 순간들은 언제였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기도]

이 땅에서의 삶에 안주하며 천국에 대한 소망을 구체적으로 갖고 살아가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천국에 가면 그토록 찬양했던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그분과 대화할 수 있으며, 믿음의 선진들과 만나 신앙의 여정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참 기대가 됩니다. 천국 소망을 품고 기대하며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7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는 여러 마을로 가셨습니다. 가는 길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예언자 중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9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3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셨습니다. 3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받아 죽임당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마가복음 6:27~31)

[관찰]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2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한가지는 "다른 사람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다른 한가지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세상이 평가하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시고 제자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을 충격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자신이 많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3일 만에 부활하신다" 제자들은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예수님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난, 십자가, 부활이라는 3가지 단어는 머릿속에 뚜렷하게 기억하게된 순간이었을 것 입니다. 

[적용]

오늘 본문을 통해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 여기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실제 삶 속에서는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 잠시 필요할 때만 부르고 주님이 필요하시다 할 때는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구원자시고 나의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 보다는 내 뜻대로 살아가려했던 모습이 더욱 많았습니다. 분명 십자가 사랑이 느껴져 예배를 사모하고 봉사를 했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냉냉한 가슴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을 생각하며 나에게 예수님이란 어떤분인지 묵상하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기도]

삶의 우선순위 없이 살아온 시간들을 회개합니다. 조금 더 소중한 것을 위해 허락하신 시간을 사용하게 하시고 그 시간 속에서 주님이 주신 질문에 대해 생각하며, 삶 가운데 답을 찾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마가복음 8:1~10)

[관찰]

마가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뒤 이와 비슷한 칠병이어 기적을 8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인데 디테일한 부분이 달라 모두 기록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건 전후 상황이 달랐기에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보고 묵상했습니다. 한번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었는데도 음식을 어떻게 찾아 이 사람들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어떻게 오병이어 사건을 잊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묵상하다 문득 "나는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에 묵상한 큐티도 기억하지 못하고 하루를 살아갈 때가 많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난 후 뜨겁게 그분을 사랑하고 찬양했던 순간들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나도 동일한 역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적용]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1)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 늘리기

2) 매일 아침 QT시간 확보하기 

3) 기도제목, QT묵상한 내용 저녁 때 다시 들여다 보기 

절대적으로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

삶의 중요한 순간 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떻게 가야할지 방향을 묻고 결정해왔었는데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그 모든 경험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저에게 허락해주신 이 땅에서의 시간들을 의미없이 사용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허락하신 사명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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