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밤이나 낮이나 https://youtu.be/QP9iqq-FYJ8?t=1587

 

[본문]

19 내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습니다. 이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유대 사람처럼 된 것은 유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이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1 내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지만 율법 없는 사람들에게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2 연약한 사람들에게 내가 연약한 사람처럼 된 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어떻게든지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23 내가 복음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이 주는 복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9~23절) 

 

[관찰]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다는 바울의 고백에서 예수님이 이땅에 우리를 섬기러 내려오셨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의 눈 높이에 맞게 비유로 설명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바울의 고백속에 들어난 것은 성령께서 바울안에 일하셨기에 그분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드러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적용]

어떤 사람과 교제하느냐에 따라 나의 성향과 성품이 달라짐을 오늘 바울사도의 고백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서 나의 생각과 말을 주장하면 성령님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고 세상의 욕망과 가치관을 자주 접하면 세상이 생각과 성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기에 바울도 그분의 우선순위에 맞춰 생각과 행동을 바꿔나갔던 것 처럼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주님의 가치관우 삶의 우선순위가 저에게도 자연스럽게 역사하길 소망합니다. 

 

[기도]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내가 기뻐하는 일이 되고, 성령께서 안타까워하는 영혼에 대한 시각이 나의 시각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말투와 성향이 드러나기 보다는 주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나의 안에 거하라 https://youtu.be/QP9iqq-FYJ8?t=398

 

[본문]

16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게는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그러나 내가 자원해 이 일을 행한다면 내게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자원해서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게는 직무로 맡겨진 일입니다. 

18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게 상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전도자로서 내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18절) 

 

[관찰]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이 시키셔서 하는 일이기에 사명감으로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자신이 옳다고 여긴일을 해왔다면 (예수믿는 이들을 핍박하고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 노력) 예수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일(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칭송을 받기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허락하신 사명이었기에 이 세상 마지막날까지 그 사명을 온전히 지키고 살아갔습니다. 

 

[적용]

바울의 기록들을 묵상하다보면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하기 싫었던 순간들이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흔들림 없는 복음의 사도로 기억하고 있지만 바울에게도 인간적인 고뇌의 순간들이 많이 있었고 이때 마다 자신이 받은 사명을 다시금 붙잡고 주님과 교제함으로(기도의 시간을 통해) 회복하여 그 길을 걸어갔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겁게 느껴질 때, 교회나 신우회에서 해야하는 사역이 귀찮게 느껴지고 중요한 사역이라 느껴지지 않을 때, 낙심된 마음으로 머물지 않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께 기도함으로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맡겨주신 사역을 묵묵히 해나갈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이 지시하신 길이 아닌, 내가 원하는 길을 열심히 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소서. 지금 하고 있는 방향성이 틀렸다면 선회하게 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소서. 또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을 허락하사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주님이 일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전능하신 나의주 하나님은 https://youtu.be/QP9iqq-FYJ8?t=3173

 

[본문]

9 그러므로 여러분의 이 자유가 연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전에 앉아서 먹는 것을 누가 보면 양심에 거리낌이 있으면서도 용기를 얻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그 연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그 형제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12 이와 같이 여러분이 형제들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에 상처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넘어지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9~13절) 

 

[관찰]

교회 역사에서 ‘아디아포라'(adiaphora) 라는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명확하게 금하지 않은 영역, 문화적이거나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들이 가운을 입어야 하는지, 성도들은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아닌지, 지금도 할례를 받아야하나 아닌지 등 개인의 선택에 따라 할수도 안할수도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선택을 할 때도 만일 연약한 지체가 시험에 들 수도 있는 일들이라면 그들을 위해서 금하라고 합니다. 내가 이것을 행하는 것이 주님께서 금하신 것이 아니고 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면 행해도 되지만 그 모습을 본 누군가는 시험에 들 수 있다면 그것을 금하는 것이 사람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적용]

아이들을 양육하다보니 좋은 습관을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따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집에서 쉴 때 스마트폰을 볼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스마트폰을 보며 쉴 때는 아이들도 쉴 때는 스마트폰을 보는구나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책을 보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잘 보여주지 못하지만 쉴 때 책을 읽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아이들도 쉬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기도]

부모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제 행동을 금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선택의 순간이 올 때 (스마트폰 vs 책) ‘아디아포라'(adiaphora)가 떠오르게 하시고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내 모습 이대로 https://youtu.be/QP9iqq-FYJ8?t=3364

 

[본문]

28 그러나 당신이 결혼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결혼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육신에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내가 여러분을 아끼는 마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29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아내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슬픈 사람들은 슬프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 세상의 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28~31절) 

 

[관찰]

바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때가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마음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권면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비록 바울이 살아 있을때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으셨지만 (지금도 아직 기다리고 있지만) 이 말씀에 힘과 능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고 믿는 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계속 묵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끌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적용]

“주님을 항한 사랑과 헌신이 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큐티 해설서의 질문을 묵상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역하고 있는지 아니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정이 없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사역을 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하려 하다보니 마음에 없는 것을 하고 이것이 마음에서, 행동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위해, 주님께 찬양드리기 위해, 주님의 마음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행동하고 말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저에게 무엇보다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

주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힘과 능력을 얻게 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소서. 비록 그 과정 중에 실수하고 주님 앞에 죄를 지을 때도 있겠지만 저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이전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https://youtu.be/QP9iqq-FYJ8?t=5311

 

[본문]

9 여러분은 불의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을 알지 못합니까? 속지 마십시오. 음행하는 사람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나 간음하는 사람이나 남창이나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이나 

10 도둑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나 술꾼이나 남을 헐뜯는 사람이나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하는 사람이나 약탈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11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음을 받고 거룩해져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1절) 

 

[관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이방민족의 영향을 적게 받았을 때는 이 모든 것들이 죄임을 알고 멀리 했었는데 이방민족에게 주권을 뺏기고 이방문화가 범람하자 죄에 대한 기준이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 로마 문화 속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세상 문화 속에 살아가다보면, 주변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행하다보면 그것이 죄인지 모르고 자연스럽게 물들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고 성령으로 씻음을 받고 거룩해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기도]

주님~ 죄를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주시고 죄를 짓고 그대로 머물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앞에 회개하게 하소서. 그리고 죄로 인해 삶이 무너지고 있는 이들에게 죄의 문제를 말할 수 있고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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