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마가복음 11:22~25)

[관찰&적용]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 말씀을 들을 때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성경 속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과 주님이 놀랍도록 역사하신 상황들을 보며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 삶 가운데서 어려운 일을 당해 주님께 기도하고 응답의 시간이 길어질 때는 이 믿음이 연약해집니다. 기간 내에 응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금전적으로 문제가 클텐데 어떻게 해야하지?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걸까? 여러가지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마음에 불안감을 줍니다. 불안한 마음, 복잡한 심경 속에 힘겹지만 이러한 상황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내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기도하고 응답하실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인것 같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지나고 주님께 기도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셨는지 명확히 볼 수 있는데 기도하는 중간에는 이 것을 보지 못하여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와 응답의 중간시간 동안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기도]

주님~ 기도와 응답의 중간 시간 동안에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비록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상황이 이해되지 않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허락하시고 예비하시는 분임을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46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마가복음 10:46~52) 

[관찰]

눈이 보이는 사람은 예수님이 어디계신지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분께 나아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고쳐주실 것을 간구할 수 있지만 바디매오 같은 맹인은 예수님이 어디계신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예수님이 어디계신지 사람들에게 묻고 가까이 가서 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여러 소리가 들려 자신의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더욱 큰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렀습니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말씀인데 바디매오의 간절한 목소리를 묵상하다보니 나의 부르짖음,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의 부르짖음과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

주님

요즘들어 더욱 내 힘과 지혜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마주할 때 많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은 문제라 대응할 방법을 찾기도 어렵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려 해도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곳이고 이곳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하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나아가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절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은 것 처럼, 나의 문제를 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 밤낮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여 주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가복음 10:35~40)

[관찰]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로마로 부터 독립하는 그 때를 기대하며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서있기를 원한다고 자신들의 부탁을 꼭들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비유로 말씀하시며 언젠가 제자들도 그 길을 따라오게 될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언젠가 그때가 되면 이 말씀이 기억되고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길을 제자들도 걸어가게 될 것을 기대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적용]

새벽 예배 때 목사님이 본문을 해설하시며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는가?" 지금까지 주의 일을 하는 것을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질문하셔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명 그 가운데 피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묵묵히 주의 일을 감당했던 이전의 모습들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이렇게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게으름 피우고, 불편하다 피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했던 모습들이 떠올라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주님이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임을 기억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감당해야겠습니다. 

[기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과실을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처럼, 우리 가족이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가족안에 거하여 주님의 거룩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능력으로 선포하며,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3예수님은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재산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 하고 말씀하셨다. 24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라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정말 어렵다. 25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 26그러자 제자들은 더욱 놀라며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27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며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0:23~27) 

[관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는 비유의 말씀속에 바늘귀는 2가지 의미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실제 바늘의 눈(귀)을 통해 낙타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와 도시벽의 작은 관문(바늘귀의 비유적 의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낙타에 짐을 모두 내려 놓아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후자의 경우 짐을 내려 놓으면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결국 짐을 내려 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두가지 모두 물질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둘것인가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물질을 의지하여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구원자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묻고 계십니다. 

[적용]

나는 물질이 우선인가? 하나님이 우선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질이 줄어들 때, 물질의 부족함이 느껴질 때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하나님과 멀어질 때, 하나님과 교제가 소원해질 때는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질 때 더욱 두려움과 갈급함이 느껴져야 나의 우선순위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물질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컸던 것 같습니다. 물질이 없음 보다 하나님이 없음이 더욱 걱정되고 두려워할 수 있는 믿음의 우선순위가 제 영혼 가운데 온전히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부자 청년의 걱정과 동일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저의 나약한 믿음을 성장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믿음이 자라날 수도, 삶의 우선순위가 변경될 수도 없사오니 주님께서 제 생각과 마음과 영혼을 바꿔주시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실력을 허락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7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19너는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 증언하지 말아라. 남을 속여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한 계명들을 알고 있겠지?” 20그러자 그는 “선생님, 저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하였다. 21그때 예수님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2그러나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 버렸다. (마가복음 10:17~22)

[관찰]

사순절 새벽 예배 때 목사님이 사람의 선함과 하나님의 선함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해서 설명주셨습니다. 사람의 선함은 부자 청년이 해왔던 도덕적인 행동을 하나님의 선함은 구원과 영생을 의미 합니다. 사람들에게 해를 치지 않고 율법대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청년이 그 단계를 뛰어 넘어 구원과 영생에 관심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한 그 가치를 깨달아 결단하길 바라셨습니다. 만일 이 청년이 구원과 영생의 가치가 물질 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을 따랐다면 베드로 보다 더 귀하게 주님의 제자로 사용되었을 것 입니다. 

[적용]

관점이 변화될 때 주님의 마음과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온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촛점이 맞춰져 있으면 모든 기도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가 나올 수 밖에 없고 온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 나라, 구원과 영생에 촛점이 맞춰져 있으면 기도 제목이 영혼구원, 천국소망, 하늘의 영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시각이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촛점을 맞춰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세상의 일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해결해가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저의 시각을 바꿔주사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영혼을 바라보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제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바른 판단을 하게 하시고 필요한 말을 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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