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3그때 사람들이 손을 얹어 축복해 달라고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왔으나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꾸짖었다. 14그러자 예수님은 이것을 보고 분개하시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6그러고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안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마가복음 10:13~16) 

[관찰]

제자들의 만류에도 아이들을 데리고와서 예수님께 축복을 받게하려 했던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눈이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아이들의 부모님, 할머니/할아버지, 삼촌, 옆집 아저씨, 동네 형, 누나.. 등 이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께 축복을 받으면 이 아이의 인생이 얼마나 복된 삶이 될까 하는 기대감에서 데려왔던 것 같습니다. 

[적용]

예수님을 만나는 예배당에 올 때 이런 기대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전에만 계시는 분은 아니지만 그분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준비된 정성, 그곳까지 이동한 발걸음, 준비되어진 예물 등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께 집중하고 몰입하는 환경이 예배당을 특별하게 의미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만나게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 처럼, 아이들에게 이 과정을 설명하고 데려와 예배 가운데 거룩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습니다. 

[기도]

습관적으로 드렸던 예배의 모습에서 벗어나 온전히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예배를 기대하고 소망하게 하여주소서. 예배 가운데 주님을 경험하고 삶의 궤적이 달라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예배 뿐 아니라 자녀들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축복하여 주사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 허락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6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7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더라 10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묻자온대 11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마가복음 10장 6~12절) 

[관찰]

남여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룬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임의로 가정을 깨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선택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가정을 바라보고 아내를 바라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적용]

나의 가정이 만들어진 과정, 이후 자녀를 키우고 양육하는 과정, 양가 가정과 함께 가족을 이루는 과정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감사하고 은혜가 더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있었는데 미쳐 생각하지 못하고 감사를 표현하지 못한 순간들이 더욱 많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가정을 이루시고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기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바라보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저에게 영적인 권위와 책임의식을 갖게 하여 주소서. 믿음으로 가정을 이끌 수 있는 믿음의 가장이 되게 하시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의 제단을 쌓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본문]

33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쌔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마가복음 9장 33~37절) 

[관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하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봐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는 연약하고, 한사람의 인력이 되지 못하기에 세상의 기준으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아이들을 사회적 필요나 역할의 관점으로 보시지 않고 동일한 한 영혼으로 바라보시고 그들도 섬겨야할 대상으로 보셨습니다. 

[적용]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권력이 있는자나 없는자나, 남자나 여자나 구분없이 하나님께는 소중한 영혼임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나의 필요에 따라 중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다르게 대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한 영혼, 한 영혼 모두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소서. 

[기도]

저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자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판단은 하나님의 역할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역할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이 가진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구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며 섬길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0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쌔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32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마가복음 9장 30~32절) 

[관찰]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두려워하여 더이상 묻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지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러한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들이 꿈꿔왔던 이스라엘의 왕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아서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적용]

주님이 보여주신 사역이 있을 때 내가 생각한 방향과 같지 않아서,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애써 외면했던 상황들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생각한 방식이 정답이 아닌데 이 방식이 아니고서는 해결책이 없는 것 처럼 생각하며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던 부족한 모습들을 회개합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보게 되고 무엇이 주님을 향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보는 요즘입니다. 

[기도]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야할 때 주님의 계획을 기도 여쭤보며 준비하며 맡겨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하여주소서. 기도 외에는 어떠한 능력도 나올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에 힘쓰는 주의 자녀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8~29)

[관찰]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기 위해 제자들이 동분서주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오셔서 그 아이에게 있는 귀신을 꾸짖어 쫓아 주시고 그 아이의 말못하였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수 많은 이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어떻게 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던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기도 이외에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적용]

예수님은 어떠한 마음과 소원으로 아이를 위해 기도하셨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이의 영혼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온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그리고 주변에서 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필요하다는 기도를 드리셨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드리는가 잠시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현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해왔던 것 같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영혼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도란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에 맞닿아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깨닫게 됩니다. 

[기도]

영혼을 바라보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여주소서. 저의 관점과 시선을 바꿔주사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훈련이 되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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